[공연평]부조리한 세계에 던지는 絃의 공감각적 울림— 극단 미르의 <기억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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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미르의 '기억의 방'. 제공: 극단 미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가?

(더 마이스=김태경 기자) 살다보면 우리는 예상하지 못하는 변화를 경험한다. 그 변화에 때로는 놀라움으로, 때로는 담대하게 즐기는 기쁨으로, 또 때로는 공격적인 자기 방어의 성향으로 대응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생에서 느끼는 변화의 중요성을 필연으로 느낀다.

인천의 문화 1번지 동인천 신포동에 위치한 떼아뜨르 다락 소극장에서, 5월 10일부터 공연을 시작하여 5월 19일 공연을 마친 인천의 대표 극단 미르(대표 이재상)에서 국내 초연한 정통연극 <기억의 방)을 보며, 우리는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연극이라는 제의가 던져주는 공연 담론이 왜 우리의 삶에 중요한가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문득 오래 전, 인천에서 열린 연극제에 초대된 외국의 우수극단 초대작이 떠올랐다. 그 작품들 중에서 내용이나 작품의 구조 등은 전혀 다르지만, 일본 극단 [도비라좌]의 대표작 ‘동화의 관’을 보았을 때 받은 깊은 인상이, 연극 <기억의 방>에서 희화적으로 울리는 작금 우리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와 병치되어 다가왔다. 연극은 세계 공통의 무대 언어이므로 좋은 작품이 주는 감동은 한결 같은 것이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출입문(권력의 중심부를 상징(Symbolism)할 수도 있는)은 굳게 닫혀 있다. 무대 오른쪽에 침대가 하나 방치되어 있고 무대는 비어 있다. 영국 연출가 브룩의 저술에서 유명해진 ‘비어있는 공간(The Empty Space)’이 만들고 현대연극의 공식과 흡사하게 텅텅 비어 있는 무대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서 어서 채워 넣어야할 공간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어 들어가 채워 넣는 작업에 동참하고 싶은 감각을 깨워준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오프닝 음악이 끝나고 막이 열리면 휠체어를 탄 할머니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린 채 무대의 양 면을 채우고 몽롱하게 앉아 있다. 몽롱함은 복잡하고 즉물적인 현대사회의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변화 또는 타의 적인 정세적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얼굴모습이다. 그 얼굴 모습과 함께 오프닝 되는 연극 <기억의 방>은, 이상의 시詩 이상한 가역반응에 나오는 ‘어느 날 태양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같은 부조리한 권력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깨어있는 존재의식과 힘없는 저항의식(?)의 양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서사와 진실의 육화된 공간언어

연극이라는 장르에는 철학적 담론과 문학적 감성, 그리고 실험적 창작이라는 특성이 작품마다 다르게 분포하지만, 모든 장르를 포함하여 재현하는 또 다른 실험성도 있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를 파격적인 실험과 독창적인 재해석으로 전 세계를 흥분시켰던 연출가 김낙형의 [맥베드]에서는 단순한 무대 장치와 내우들의 동작언어, 극히 절제된 시적인 대사만으로도 맥베드의 욕망과 레이디 맥베드의 광기가 절묘하게 우러나는 삶의 깊은 성찰을 보여준 바 있었다.

언급한 일본 극단 도비라좌의 연극 <동화의 관>과 극단 미르의 연극 <기억의 방>의 경우, 두 연극 모두 관람 내내 시종 목울대를 울리고 명치끝을 눌러오는 감동이 내적 수렴의 과정을 거쳐 관람자의 목을 마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여 필자는 그 시절에도 지금도 소름 돋는 전율에 공연이 끝난 후, 연출가 요코우치 켄스케와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재상님과의 진지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두 연극의 내용은 사뭇 다르다. <기억의 방>이 거대한 권력구조의 속성을 관찰하고 토해내는 연출의 내적인 힘이 철학담론에 대한 서사의 설명적 호흡을 정립한데 비해, <동화의 관>은 매우 담백하고 절제된 줄거리(마을의 어떤 여인에 대한)속에 만 마을의 감춰진 진실을 소름끼치는 전율 속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가 두 연극에 공통점을 주입하고 비교하는 것에는, 두 연극 모두 단지 네 명의 출연자와 음향이나 음악의 힘만으로 마치 가인歌人이 정악이라고 부르는 비음 섞인 노래로 세상의 아픔을 위무하듯, 단위 사회의 진실과 이면을 훌륭하게 봉인해제 시켰다는 점이다.

<동화의 관>에서는 무대 배우들 스스로가 음향효과를 연출하여 미닫이문 여닫기, 베틀 짜는 소리, 기타 각종 소리들(가령 비오는 소리 등)도 만들어냈다. 무대 주위에 켰다 껐다 하는 것만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30여개 촛불의 미학은 특히 그 공연의 절정이었다. 이에 견주어 <기억의 방>에서는 주로 현을 위주로 견고하게 짜 넣은 단색의 직조된 음악이 무대와 무대 사이를 넘나들며, 지배와 피지배의 부조리를 토설하거나 제어하는 배우들의 활성화된 힘찬 연기를 절제시키는 도우미의 견고한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극을 진행하는 독특한 연출 방식이 돋보인 극단 미르의 <기억의 방>에서 오래 전 만났었던 일본 연극 <동화의 관>이 준 진지성과 철학적 울림을 다시 확인했다면 지나친 과잉비유일까? 연극이 제약된 공간 속에 우주적인 철학의 깊이를 육화하여 표현하는 기제라면 거대한 권력구조 속에 사는 인간 모두는 지배와 피지배, 저항과 순응 사이의 속성을 지나서 모두 피해자인 것이다. 마치 매트릭스와 어벤저스 시리즈의 환각과 진공 상태처럼 말이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다분히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직선의 구조이다. 이 직선이 조금이라도 구부러지거나 휘게 될 경우 우리의 반응체계는 당황하고 방어막의 온도는 급격히 상승한다. 권력구조의 속성도 이와 같은 논법에 충실하다. 사실주의 연극의 거두인 체호프(갈매기, 벚꽃동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전문 연출가이자 작가인 이재상은, <물의 기억><현자를 찾아서><미드나이트 포장마차><별이 내려온다.> 등을 통해 쌓아놓은 친서민적이고 감각적인 유연한 사고에 <기억의 방>을 통한 서사적 깊이 하나를 채워 넣어 정립도형 완성체가 되어 가고 있다. <기억의 방>을 만들면서 이재상은 <동화의 관>처럼 작품의 서사나 외향적 톤의 묵직한 힘을 통해서 사회구조의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지식인의 노력을 보여준 것이다.

●극복하거나, 순응하거나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지 않은 것은 한번쯤 반드시 봐야할 연극이라고 믿기 때문이며, 직접 보고나서 느끼는 자신의 생각이 곧 이 작품이 전달하려는 창작의도라고 믿기 때문이다.

담백한 무대는 작품의 형상화에 적절한 듯 보였고 배우들의 연기는 일정한 품격이 있었다. 때로는 열정이 지나쳐 샤우팅 과잉의 독백이 되기도 했지만, 정신질환자(피지배자?)를 맡은 두 여배우의 발성과 연기력, 그리고 리액션은 훌륭했고 리얼한 표정연기는 살아 있었다.

더불어 의사(또는 지배자?)로 분한 두 젊은 배우들은 관록에 비해 절제되고 차분한 발성과 호흡으로 주연인 두 여배우의 의식과잉을 제어해 주었다. 엔딩 장면에서 옆의 병실을 모르스 부호처럼 일정하게 두드리면 똑 같은 두드림이 울려오고 두 환자(양은영, 박은희 분)가 서로 마주보고 웃는 장면은, 현실이해와 벗어남 사이의 묘한 곡예를 보는 것 같아 편안했다.

자신의 생각이 최대한 감성적이고 진솔하게 노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작가나 연출가들의 한결 같은 바람일 것이다. 주제를 부각시키려 조금은 직설적으로 톤을 높게 잡은 작가의 의도와 연출은, 감각적인 언어와 강하고 유연한 배우들의 연기, 무대 중앙을 뚫는 문과 무대 구석의 침대, 그리고 두 대의 휠체어와 조명만으로 이야기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열어 두었다.

순응하고 살거나, 벗어나려는 몸부림에 격정적인 반응을 하며 살거나, 우리네 삶의 모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부조리한 세계에 사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진실이라는 상품이 얼마나 갚진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연극의 힘에는, ‘우리네 삶이 곧 한 편의 연극이 아니겠느냐’는 당연한 질문이 선문답처럼 내재되어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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