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태어난 익산미륵사지 석탑, 최장기간의 조사와 수리를 거쳐 1380돌에 새로이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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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조사 수리사에 최장기간으로 기록된 20년에 걸친 조사 수리를 거쳐 준공식을 가진 익산미륵사지석탑, 사진제공: 문화재청

(더 마이스=허중현 기자) 우리나라 문화재수리사에서 단일 문화재로는 20년이라는 최장 기간 동안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수리가 진행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 준공식이 4월 30일 오후 2시에 진행되었다. 올해는 사리를 봉안하고 석탑이 건립된 지 1,380주년이 되는 해다.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 있었고 일제강점기인 1915년,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운 상태였다. 1998년 구조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콘크리트가 노후되었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9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체보수가 결정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종덕)는 2001년부터 석탑의 본격적인 해체조사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학술조사연구와 구조보강, 보존처리 등을 시행하여 2017년 말 6층까지 석탑의 조립을 완료하였다. 완공된 석탑은 높이 14.5m, 너비 12.5m, 사용된 부재는 총 1,627개로 무게가 약 1,830톤에 이른다.

미륵사지 석탑은 최장기간 동안 체계적인 연구와 수리가 진행되었으며, 국제적 기준에 따라 보수정비 과정을 이행함으로써 석조문화재 수리의 선도적 사례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추정에 의한 복원이 아닌, 원래의 부재를 81%까지 최대한 재사용하여 석탑의 진정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수리 전과후의 익산미륵사지 석탑 동측, 사진제공: 문화재청
수리 전과후의 익산미륵사지석탑 북측, 사진제공: 문화재청

7세기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익산 미륵사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사찰로써 왕실의 안녕과 중생의 불도佛道를 기원하며 건립된 사찰이다.

미륵사에 대한 문헌기록은 많지 않지만 삼국유사 무왕조에 「어느 날 왕과 왕비가 사자사로 가는 도중에 용화산 밑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연하였다.

이에 왕비가 이곳에 절을 세워줄 것을 청하자 왕이 지명법사에게 명하여 연못을 메우고 세 곳에 금당과 탑, 회랑 등을 세웠다」 는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미륵사는 1980~1994년 발굴조사를 통해 그 전체적인 모습이 확인되었는데 창건이후 다양한 변화를 거쳐 16세기 후반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는 세 개의 탑(중앙 목탑, 동·서 석탑)과 금당, 승방, 강당 등이 배치된 3탑3금당의 독특한 배치형식을 갖고 있다. 당시의 백제 사찰들이 주로 1탑1금당 형식이였던 것을 고려하면 미륵사는 3개의 사찰이 동·서로 나란히 배치된 모습에 가깝다.

현재 미륵사지는 건물들이 모두 멸실된 상태지만 다양한 건물지 유구와 함께 석탑, 당간지주(보물 제236호)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엿볼 수 있으며, 2015년에는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 유산에 포함되었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의 최초 노출 상태, 문화재청은 사리장엄구의 보물지정을 예고했다. 사진제공: 문화재청

한편, 이날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 준공기념식’에는 익산시립무용단의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준공식 행사와 함께 불교계의 기념법회가 함께 진행되었으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오는 5월, 미륵사지 석탑의 조사연구와 수리 결과를 공유하고 문화재 수리의 현황과 과제를 논의하기 위한 학술포럼을 비롯하여 올해 말까지 그동안의 연구 성과와 해체보수 과정을 기록한 수리보고서를 발간해 전체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자료제공: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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