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최고의 문예군주를 꿈꾼 ‘왕세자 효명’을 만난다.

국립고궁박물관, 6월 28일-9월22일 '구르미 그린 달빛'의 왕세자 효명 특별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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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의 예진은 1954년 화재로 절반 정도가 불에 타서 현재 표제와 초상화 일부만 남아있다. 사진:허중현기자

(더 마이스=허중현 기자) 지난 2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효명세자를 돌아보는 “문예군주를 꿈꾼 왕세자, 효명” 특별전의 개막식이 있었다. 효명세자는 22세라는 짧은 삶으로 대중적으로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는 죽은 후 100년 넘은 세월이 지난 2016년 8월, KBS 18부작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 다시 세상을 만나고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효명세자’ 역은 박보검이 맡았다.

효명세자(1809~1830년)는 조선 제23대 국왕 순조와 순원(純元)왕후 김씨의 맏아들로 1809년(순조 9) 8월 9일에 탄생했다. 3세 때 이름을 영(旲. 원래 발음은 ‘대’지만 ‘영’으로 부르도록 했다)이라고 정하고(1812년 6월 2일), 왕세자로 책봉되었다(7월 6일).

효명세자는 22세라는 짧은 삶을 살았지만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본 3년간의 대리청정 기간(1827.2월~1830.4월)에 궁중 연향(잔치)과 궁중정재(呈才), 궁궐 영건, 궁궐도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은을 도금한 일월병과 잔, 잔받침, 사진:허중현기자

효명이 남긴 업적은 정조를 잇는 또 한명의 뛰어난 문예군주를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을 남게 한다. 비록 생전에 왕위에 오를 수는 없었으나 고종이 효명세자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익종’의 존호가 추존되었고, 1897년 고종이 황제의 나라인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익황제’의 칭호와 ‘문조’라는 묘효가 올려졌다. 특히 추존된 왕 중 유일하게 종묘 정전에 위패가 모셔졌으며, 15차례에 걸쳐 덕을 기리는 존호(尊號)를 받아 종묘에 모셔진 조선의 국왕 중 어보와 어책이 가장 많다.

효명세자의 두드러진 특징은 짧은 생애에도 문학과 예술에서 남다른 성취를 이뤘다는 것이었다. 세자는 ‘경헌시초(敬軒詩抄)’, ‘학석집(鶴石集)’, ‘담여헌시집(談如軒詩集)’, ‘경헌집(敬軒集)’ 등의 여러 문집을 남겼다. 거기에는 시조(9수)와 ‘목멱산(木覓山)’, ‘한강(漢江)’, ‘춘당대(春塘臺)’ 등의 국문 악장을 비롯해 40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시는 연작이 많아 실제 편수는 이것을 훨씬 넘는다.

효명세자의 편지글 모음, 익종간첩(翼宗簡帖)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효명세자가 여동생 명온공주明溫公主(1810~1832)와 주고받은 시와 편지를 모은 첩이다. 한시에 음을 병기하고 한글 번역과 주석을 달았다. 육각형을 중심으로 좌우를 읽으면 시가 되는 「귀문도龜文圖」와 같은 특별한 형태의 시도 실려 있다. 편지글에서 한글로 문자 생활을 한 공주에 대한 배려와 남매간의 우애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공:국립고궁박물관

시는 자연을 감상한 내용과 누이와의 우애를 그린 작품이 많다. 그에게는 명온(明溫)·복온(福溫)·덕온(德溫)공주 등 누이동생만 셋이 있었는데, 그들과 각별한 정을 나눴다고 전하며 이번 전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모두 짧은 생을 살다가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현재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덕온공주 집안 3대가 한글로 마음을 전한 한글 자료를 소개하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이번 특별전은 ▲효명세자의 생애,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시인 효명, ▲궁궐도에 나타난 효명세자의 공간, ▲궁중잔치의 개최와 궁중정재의 창작 등으로 구성, 효명세자가 이룩한 업적과 이러한 성과를 남길 수 있었던 배경으로 그의 성장 과정과 교육, 문예적 재능 등을 주제로 110여 건의 유물과 다양한 매체와 영상기법, 재현공간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짦은 생애에도 효명세자는 많은 저서를 남겼다. 사진:허중현기자

먼저, ▲ 효명세자의 생애는 22세 짧은 세자의 삶을 탄생‧책봉, 교육‧입학, 관례‧가례, 대리청정, 죽음의 시간 순으로 소개되고 있다. 왕세자 책봉 후 지속적으로 기록된 ‘동궁일기(東宮日記)’와 대리청정 시 정무 내용에 대한 기록인 ‘대청시일록(代聽時日錄)’을 비롯해 성균관 입학과 관례 등 왕세자 효명의 주요 통과의례를 그림으로 기록한 ‘왕세자입학도’와 ‘수교도’, 그리고 효명세자의 18세 모습을 담은 예진(睿眞, 왕세자 초상화)과 1830년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직접 쓴 표제가 남아 있는 <순조 어진> 등의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시인, 효명에서는 정조에 버금가는 효명세자의 문학적 재능과 성취를 보여주는 ‘학석집’ 등 효명이 지은 각종 시집과 문집, 편지글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별히, 전시 공간을 효명의 서재인 의두합(倚斗閤, 창덕궁 후원 애련지 옆에 자리함)으로 꾸며 관람객들은 효명의 서재를 둘러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서재 의두합은 효명세자가 창작한 시의 주요 소재이기도 한데, 효명세자는 의두합의 경치를 10가지 절경으로 분류한 시 ‘십경(十景)’을 짓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십경’을 비롯한 효명의 시, 신하들이 지은 답시 등을 영상자료와 함께 소개한다. 영상은 의두합 주변으로 펼쳐진 창덕궁 후원의 아름다운 사계(四季)를 담아냈다.

그리고, ▲궁궐도에 나타난 효명세자의 공간에서는 효명세자 대리청정기에 제작된 ‘동궐도’에 나타난 효명세자의 정치·교육·개인 공간들의 세부를 소개하는 9m의 대형영상을 통해 기존에 조명되지 않은 ‘동궐도’ 속 효명세자의 거처와 창작 공간의 의미와 기능, 이를 통한 효명세자의 삶의 지향 등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다음으로 ▲궁중잔치의 개최와 궁중정재의 창작에서는 궁중 잔치와 정재에서 효명세자가 이룬 괄목할만한 업적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대리청정기 동안 왕실의 위상 강화를 위해 매년 궁중 잔치를 개최하면서 밤잔치인 ‘야진찬(夜進饌)’을 처음 행하고, 23종의 정재에 대한 창작을 주도하며 독무(獨舞)를 처음 선보이는 등 조선후기 궁중 정재의 혁신을 이끌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1829년 자경전 밤잔치의 모습을 당시 유물과 투명 디스플레이(display) 화면에 펼쳐지는 3차원 입체(3D) 만화영상으로 구현해냈다. 왕실여성이 참여한 이 잔치에서는 여령(女伶, 여성 공연자)이 정재를 연행했는데, 효명세자가 창작한 궁중정재와 잔치의 재현을 위해 기존에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여령 복식’과 왕실 잔치에 술잔으로 사용된 ‘옥잔’과 ‘마노잔’(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있다.

옥으로 만든 잔, 중국 청(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 사진:허중현기자

한편, 특별전 기간에는 특별강연을 비롯해 효명세자의 주요 업적인 궁중정재를 직접 볼 수 있는 공연도 진행된다. 먼저, 효명세자의 생애와 문학, 회화, 궁궐, 궁중정재 등에서의 업적을 살펴 볼 수 있는 특별강연이 7월 11일과 9월 5일에 본관 강당에서 각각 열린다.

7월 11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효명세자의 삶과 문학(이종묵, 서울대학교), ▲회화를 통해 본 효명세자의 삶(손명희, 국립고궁박물관)이, 9월 5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효명세자와 창작 정재(조경아, 한국예술종합학교), ▲효명세자 대리청정시기 동궐의 건축적 변화(정정남, 경기대학교) 강의가 진행된다. 7월 14일 오후 3시에는 국립국악원과의 협업으로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 로비에서 효명세자가 창작한 궁중정재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9월 22일까지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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