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o’Story] (18) 하얀 목련이 휘날리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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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마이스=Macho 칼럼니스트) 선에 엎드려 저 아래 보이는 인민군 동태를 살핀 지 몇 시간 째다.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복귀할 수 있나? 발각되면 싸우다 자폭해야 하나 아니면…? 한 달 전 머리카락, 손발톱을 잘라 봉투에 넣고 유서 쓸 때부터 머릿속에 여러 그림이 막 지나갔다. 잡혀 고문당하고 죽느니 다 죽이고 죽는 게 쉬운데 안타까운 건 그러면 가족과 친구들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거다. 내 심장이 두 쿵 거리며 막 아우성치자 저만치서 졸던 산비둘기도 진동을 느꼈는지 눈을 뜬다. 모기가 아까부터 얼굴과 손등에 달려든다.

권총을 꼭 쥔 손은 땀에 미끈거린다. 자폭용 수류탄을 다시 확인했다. 목구멍이 메말라 목이 메고 너무 긴장해서 토할 거 같다. 머릿속에 갑자기 하얀 목련이 떠오른다. 내 소원은 군대 가면 낙하산 한번 타보는 거였다. 기왕 가는 군대에서 낙하산을 못 타면 평생 한이 될 거 같았다. 베레모를 쓴 군인만 보면 낙하산을 탈 수 있는 부대를 물었다. 그러다 겨울방학 때 병무청을 가보니 붉은 손글씨로 ‘특수부대원 모집’이란 대자보가 벽에 보인다… 한참을 서서 쳐다보는데 한 아저씨가 다가왔다. 난 ‘낙하산을 탈 수 있냐고’만 물었다.

얼김에 대한민국 국방부와 계약한 후 과연 이게 잘한 건가 혼란스러워 담배 한 갑을 순식간에 다 태웠다. 우리가 탄 버스는 커튼으로 창문이 다 가려져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아까 흔들리는 커튼 틈 사이로 ‘38선 표식’을 언뜻 봤다고 속삭인다. 칠흑 같은 산속에 도착하자 반짝이는 불빛들이 보인다. 한동안 그냥 맞고 앞뒤로 구르고 뛰다 보니 그 불빛들은 몽둥이를 든 사내들 눈빛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발가벗겨 그냥 짐승 우리 속에 내던져진 거 같다. 누군가 울먹이며 집에 돌려보내 달라고 했다가 다시 춤추는 몽둥이를 보고 혹시나 했던 우리는 포기했다.

꽃피는 4월이라지만 설악산은 아침저녁으로 추웠다. 강원도는 5월 말까지 응달엔 눈과 얼음이 보이고 9월이면 서리가 내린다. 나무도 옮겨 심으면 잎이 시들고 새 흙에 적응하려는 시간이 필요하고 적응 못 하면 그냥 말라 죽는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까, 몸살 기운이 든다. 조교에게 말하니 모래 자루 두 개를 주며 양어깨에 메고 연병장을 뛰란다. 조교의 몽둥이에 쫓기며 오전 내내 속옷 차림에 맨발로 뛰자 몸살은 깨끗이 사라졌다.

 

 

처음엔 몇 km로 겨우 뛰었던 내가 이젠 매일 양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30㎏의 모래 배낭을 메고 밤에도 시속 13㎞로 산봉우리까지 뛰었다. 개보다 더 빨리 산을 뛰어올라 건넛산으로 가파른 암벽을 내달렸다. 우리는 무조건 북한 특수부대보다 체력이 앞서야 했다. 하루하루 조금씩 적응이 되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나를 그 틀에 구겨 넣고 맞춰갔다. 기준에 통과 못 하면 몽둥이가 날아오니 목숨을 걸었다. 하루도 이렇게 힘든데 언제 한 달, 일 년이 가고 집에 가는 날이 오나 생각하니 막 호흡이 안 되고 미쳐버릴 거 같았다. 한동안 어쩌다 기우는 석양을 보면 내일이 또 오는 게 두려워 손이 막 부들부들 떨렸다.

어떠한 힘든 훈련과 설령 구타가 있더라도 다국가를 위한 것이고 우리가 임무를 완수하고 적진에서 살아오기 위해서다, 에 모든 게 이해됐다. 훈련 강도가 세서인지 식사도 잘 나왔고 간식으로 빵과 우유도 매일 몇 개씩 먹었다. 한 달에 돼지 몇 마리씩 나왔다. 살아있는 돼지가 오면 어설픈 취사병 대신 훈련 삼아 우리가 잡아 해체까지 했는데 돼지 멱을 딸 때 참혹한 괴성에 처음엔 고개를 돌렸던 나도 어느새 익숙하게 순식간에 멱을 땄다. ‘눈이 마음의 거울이다.’란 말이 있다. 어쩌다 거울을 보니 불과 몇 달 전 장난기 많던 19살 소년은 없고 살의가 가득 찬 눈의 거친 사내가 보여 나 자신이 어색했다.

40kg 군장을 메고 설악산을 출발해 지리산까지 갔다 오는 게 만리행군이다. 낮엔 땅굴 속에서 휴식하고 밤에만 전속력으로 달리는데 발바닥은 물집에 다 헤지고 발이 부어 못 신을까 봐 취침할 때도 군화를 안 벗었다. 부대로 돌아오자 그때야 고통을 느낄 수 있어 다들 엉거주춤하고 제대로 걷지도 앉지도 못했지만, 목청 높여 ‘김일성 마빡에다 대검을 꽂고, 유유히 돌아오라 켈로의 용사, 적진 속을 마음대로 누비는 우리, 남포동의 밤거리는 모두 나의 것. 장하다 그 이름 켈로의 용사! 용사!’를 불러댔다. 우리가 사용하는 재래식 화장실 옆 도랑에 찬 인분 속에서 머리 박고 구르며 똥물을 먹고서야 개발단의 양성훈련도 끝났다. ‘니들이 최고다. 니들이 북한군 몇 개 사단보다 강하다’란 부대장 말에 다들 사기가 충천했다. 악마 같던 조교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어떤 환경이든 적응하는 자만 살 수 있다.

각 안가에 배치받으니 일 년 전쯤 선임 한 명이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북한군의 동태를 파악하는 임무 중 변심해서 투항하다 인근에 매설된 지뢰를 밟아 죽었다고 배신하면 죽음으로 죗값을 받는다고 겁박한다. 안가 근처엔 ‘민간인 출입금지. ㅇㅇ 경찰서장’이란 푯말이 서 있다. 밖에선 안보이지만 산허리를 돌아보면 산 중턱에 있는 텃밭이 딸린 깨끗한 양옥집이 보인다. 공작대 뒤편 침투 훈련장에서 매일 철책선 통과훈련을 반복했다. 본부와 떨어져 간섭을 덜 받는 공작대는 훈련 잘하는 놈 목소리가 제일 크다.

계급은 형식적이고 장기복무자로 공작경험이 있는 선임이 반장으로 훈련을 주도했다. 장교인 팀장은 대부분 행정적일 뿐이다. 나는 야외훈련 중에 팀장과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다. 무능한 간부, 총기사고, 인권유린, 구타, 인민재판식 처형 등 생각하기 힘든 비문병적인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다들 매일 이어지는 강도 높은 훈련에 악에 받쳐 누구든 걸리면 갈기갈기 찢어 씹어먹겠다는 악다구니만 남았다.

인민군복을 입고 북한 군가를 부르고 북한말씨를 배우고 생존훈련, 독도법 등을 교육받았다. 우리 임무는 비정규전 시, 적 후방에 침투해 후방교란, 문서탈취, 요인납치, 암살, 기습파괴, 공작원 접선, 기간시설 폭파, 첩보수집 및 응징보복을 하는 거다. 철조망과 철책, 부비트랩, 함정, 사막, 귀신 지대 등 북쪽 6중 철책선을 뚫고 침투해 혼자 산속 무덤 근처에 땅굴을 파고 몸을 숨기는 은신술과 살아있는 뱀, 들쥐, 짐승, 벌레 등을 잡아먹는 생존훈련도 받았다. 적성 무기와 무성 무기훈련을 반복해 표창, 젓가락, 대검의 표적이 달렸던 아름드리나무가 벌집이 됐다. 교살용 철실로 무를 가르고 닭, 토끼의 멱을 땄다. 철성판에 개나 살아있는 동물을 매달아 표창과 칼 던지기 연습하고 잡아먹었다. (계속)

글 사진: Macho/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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