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집 검둥개

억압받는 자들에게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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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넘었으리라.
경상도 영주로 문상을 간 일이 있다. 지인의 부친께서 풍기 소백산 자락에서 사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먼길이지만 찾아뵈었다. 天壽를 채운 연세로 돌아가셨기에 好喪이었고, 조문객들이 많아서 상가는 안팎으로 매우 북적였다.
집 주변을 한바퀴 돌다가, 개장을 발견하였다. 녹슬고 비좁은 철창 안에 개가 한 마리 들었는데, 들여다 보고는 섬칫했다. 새까맣고 비썩 마른 개가 빨간 눈알을 하고서 나를 내다 본다.

모습이 마치, 영화에서 보던 악마개처럼 생겨서, 반갑지 않은 마음에 돌아서려고 하는데…낑낑하면서, 나를 불러 세우는 듯한 신음소리를 낸다. 그제서야, 알아챘다. 故人이 때마다 사료와 물을 주어서 돌보던 이 개가, 고인이 돌아가시는 무렵부터, 나를 만난 이 시간까지, 계속 방치되고 굶어 왔으며 매우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상태라는 것을. 나에게 혹시나 뭔가라도 기대했는데, 그냥 가려고 하니, 다급해서 낑낑댄 것이다.

급한대로, 눈을 한 덩어리 뭉쳐서, 철창 안에 넣어주니, 갈증이 심했는지, 열심히 핥아 먹는다. 상가 안의 주방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이 남긴 음식과 물 한 바가지를 들고가서 개밥그릇에 넣어 주었다.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모습을 잠시 지켜 보았다. 개의 입장에서는, 꿈자리가 좋아서, 貴人을 만난 턱이다.

생명체가 살아 가면서 굶주림만큼 혹독한 것은 없다. 우리가 매일 종편을 통해서 보는 “ 아이샤를 살려 주세요, XX에게 여러분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하는 소리들이—-실상은 저들이 앵벌이 사업을 한다는둥 충격적인 내막이 알려져서 놀라기도 했지만, 눈뜨고 볼 수 없는 것이 飢餓과 貧困窮乏이다. 배가 고프면 눈에는 먹는 것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역사서에 숱하게 나오는 전쟁사를 보면, ‘조조의 백만대군이 100리에 깔려서 어쩌구’하는 애기가 자주 나온다. 전쟁이 나면 소년부터 노인까지 모두 징집된다. 전쟁터에서 잔일이라도 시킬 수 있는자들은 모두 끌어가며, 공방전으로 군마들이 마을과 농지를 휩쓸고 다니고, 식량과 가축도 모두 징발된다. 전쟁이란 게 잠시간에 끝나는 게 아니고 5년 10년을 밀고 밀리고 하다보니, 농지가 있어도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나마 마을은 모두 불살라지고, 먹을 거라고는 낟알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전인민이 몇 년을 내리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풍습에서 人肉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交子而食이라는 비인간적인 사자성어도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 임진왜란 7년전쟁 懲毖錄에도 참혹한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516 군사혁명 직후, 성남으로 쫓겨난 철거민들이 산비탈에 움막을 짓고 살던 시절, 애를 출산한 산모가 배고픔에 눈이 뒤집혀서 嬰兒를 잡아먹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기겁을 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황급하게 공병대를 동원하여, 밤새도록 밀가루 푸대를 성남거리에 내던지다시피 배포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상가집의 검둥개의 모습이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머리에 떠오르곤 했다. 그때 이왕 인심을 쓸 바에는 철창문을 열어 줄 것을, 급한 먹이만 한 끼 주고 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때는 매우 춥던 嚴冬雪寒이어서, 개가 자유롭게 풀려났다 하더라도, 延命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 철창안의 삶보다, 설사 장례가 끝난 뒤 누가 급식을 해준다 하더라도, 어차피 식용으로 길러지던 신세이니, 이듬해 여름에 도살될 운명보다 낫지 않았겠는가.

그 검둥개의 붉은 눈빛도, 흉칙했던 모습도 그 개의 본래 모습이 아닐 것이다. 굶주리고 원망하고, 공간에 갇힌 고통이 쌓여서 절로 그런 모습이 되었으리라. 좋은 주인 앞에 태어나서 마음껏 自由를 누리고 뛰어 놀았다면, 누가 봐도 귀여운 그런 강아지가 되었을 것을 …..

지금 우리의 강토 절반에는 그런 검둥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同胞들이 있다. 그날 초상집의 개처럼 누구도 관심을 갖지도 않고, 도와 줄 念도 없고, 단지 살아서 숨만 쉴 뿐인 철창 안의 신세로 살고 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오로지 먹거리 생각만 하며 살면서, 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세상에 부러운 거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쉬임없이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신은미에게 물어보자, 저 철창 안의 굶주린 개가 주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개로 보이는지. 저런 개에게 自由를 주지는 못할망정, 저렇게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데 하는 소리를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스럽게 해댈 수 있는지, 어린 손자들도 그런 사회에 보내서 살게 할 용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

검둥개의 영이 있다면 사죄하고 싶다. 그때 괜히 인심쓴다고 음식지꺼기 물 한 바가지만 갖다주고, 그래도 남보다는 내가 인정을 베풀었네하며 돌아선 것이. 참으로 미안하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남들 몰래 철창문을 슬그머니 열어 줄 것이다. 無償으로 시원스럽게 베풀 수 있는 自由를 마음이 대범치 못해서 주지 못했으니 내가 참 바보 아닌가…..

북녘의 무거운 철창과 503호의 철창과, 모든 이의 마음의 철창을, 우리의 운명을 주도하시는 거룩한 손길이 쉬이 풀어주시길 간절히 고대한다.

더 마이스=신달파 칼럼니스트

사진:Pixabay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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