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 작가] 주말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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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쁠 일이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라 지방 산행 때는 주로 무궁화호를 탑니다. 비둘기호와 통일호가 없어진 후 이 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느린 철도 운송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빠르게 진화한 사회는 우리 세대가 따라잡을 수 없는 문명을 만들고 시간까지도 점령할 기세지만, 대신 무척이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습니다.

느림의 미학이지요. 시속 60km도 안 되는 비둘기호를 타고 바라보던 차창 밖의 정겨운 풍경, 덜컹거리는 레일의 굉음, 행상아주머니 소쿠리에서 나던 비린생선과 나물냄새 등, 일상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던 그 시절 우리네 생활의 달디 단 냄새가 사라진 겁니다.

그나마 무궁화호를 타면 나락 베어낸 들판에서 살랑대는 갈대의 흐느낌을 통해 가을바람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고, 여염집 기와를 만지는 어머니 젖무덤 같은 낮은 산의 온기도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룸펜에겐 저렴한 요금이 가장 큰 매력임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지요. 예고없이 사선으로 쏟아지는 국지성호우에 월출산 천황님을 온전히 뵙지 못한 불경을 저지르고(?) 올라 탄 무궁화호 객실에는, 여전히 서민들의 생활이 정겨운 곰팡이처럼 피어 있었습니다.

예전과 다른 것은 앞다투어 자리를 좇다가도, 서로 얼굴 쳐다보며 낄낄거리던 여유공간이 축소된 아쉬움이지요. 사라진 간이역이 슬퍼집니다. 그래도 남아 있는 역마다 빠짐없이 정차해주는 열차가 고맙고, 타시는 승객들의 얼굴이 반가워 통로를 지나는 분들께 다정한 눈웃음을 보내봅니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오나라 책사 조자의 車載斗量을 떠올리게 하는 우리 山河의 겸손한 지혜에, 아무런 보답도 못하는 이상한 사내의 못난 얼굴이 오버랩 됩니다. 부끄러워라. 얼른 커튼으로 차창을 가리며 눈을 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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