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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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마이스=정성민 칼럼니스트) 최근 사이비 관변 시민단체가 기승을 부린다. 소수가 모였음에도 다수대표성을 띠는 일반명사를 단체이름에 붙이기 일쑤다.

이들이 언론과 결합되면 마치 그것이 여론인 것으로 포장된다. 그리하여 정부와 국회를 압박한다.

문제는 이들의 출신성향과 주장하는 바의 외곬수적 한계다. 특정 의제를 놓고 곧잘 해당 주제에 대한 정의와 올바름을 표방하지만 이들의 관점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름하여 전세계에 광풍이 불고 있는 Political Correctness, PC다. 이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이외의 가치나 주장을 입막음하고 악마화 한다.

소속원들은 각자의 이해에 따라 대중들이 관심 갖지 않는 특정 의제에 대하여 자신들만의 솔루션을 부르짖으며 다수의 동의를 구한다.

이 과정 가장 주효한 방법은 해당 의제의 당사자와 유관한 상대되는 집단을 악으로 싸잡아 매도하는 것이다.

어느 집단이건 법적 상식적 사회상규적 행위의 완결성을 일호의 흠도 없이 갖추기란 쉽지 않다. 이 작은 흠결과 틈을 침소봉대하여 선악의 프레임 가운데 악으로 몰아 여론의 뭇매를 맞도록 기획하여 유도한다.

냄새를 맡은 언론은 이번엔 이 이슈다 하고 연쇄적으로 악의적 기사를 낸다. 시민단체와 언론의 뿌리깊은 유착이다.

그리하여 시민단체는 성공적으로 대중 앞에 데뷔하고 여론쏠림과 유행의 바람에 적잖은 일반대중이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심정적 우군이 되어준다.

물론 회원수 확보는 시민단체 활동원들의 든든한 자금줄로 등치된다. 기를 쓰고 이들 시민단체들이 한껀을 터트리며 언론에 인용되고자 하는 시도를 하는 이유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논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서 혼몽해진다. 해당이슈가 잠재워진다는 것은 이들의 홍보 모멘텀이 약화되는 것이므로 끊임없이 새로운 퍼포먼스로 대중의 관심을 유지하려 든다.

한번 흐름을 탄 이상 이 이슈가 지날때까지는 힘을 모아야 하므로 자기집단의 행위에 대한 반성은 잠시 유보한다. 다른 의견을 냈다가는 배신자로 낙인찍히므로 이견을 낼 수도, 이탈할 수도 없다.

서서히 초기 순수성은 의지관철의 탐욕과 주장반영 지연에 따른 분노로 변해간다. 이 의식을 집단내에서 공유하고 강화한다.

여기서 힘을 얻어 그들의 행동은 더욱 과격해진다. 걸리적대는 이는 무조건 정의실현의 방해꾼으로 프레임 씌워 모함하고 음해한다. 이견을 제시하면 공공의 적으로 몰아간다. 전형적인 군중화 과정이다.

요구사항 관철의 화룡점정은 입법화에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몇몇 국회의원들과 정부를 압박한다.

이 과정 투지의 영속을 위하여 자신들의 주장이 얼마나 합리적 고찰과 통찰에 기반했는지, 사회의 현실과 부합하는지, 행여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검증되진 않는다.

활동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힘을 얻는 것에 더욱 득세하여 사회전체를 아우르는 사회적 합의와는 별개로 우격다짐의 생떼를 쓸 수밖에 없다.

이쯤되면 활동원들의 행위는 행위 그 자체에 절대선성을 부여하여 공동체 가치와는 괴리가 있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우리는 약자다. 힘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힘들다지만 이미 하나의 권력으로 행세하는 것에 맛이 들린 것이다.

뭔가 입법화가 되면 자신들 모임의 대단한 성취인 것처럼 스스로 만족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이름을 알리고 명성을 얻어 차츰 정치권력에 한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다.

이 가운데 리더는 특히나 수혜를 입는다. 각종 매체의 스폿라이트를 받는다. 인터뷰요청이 쇄도한다.

활동원들은 피켓이나 들고 구호를 외치지만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기 바쁘다. 애초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미숙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활동원은 엄연히 노동을 제공한다. 일시적인 여론몰이로 모여진 후원금과 회비는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만든다.

활동비는 급여로 지급되는 경우가 적다. 각자의 열정에 이끌려 청춘과 젊음의 시간을 헌납하지만 활동원 개개인은 집단의 성취 그것으로 족할 뿐이다.

그렇게 이슈는 묻히고 지나갈 때 그들이 주장했던 것이, 그들이 이루었다 믿는 그 작은 성취들이 공동체 전체에 득이 되었는지 아닌지 재평가할 새도 없이 시민단체 자체의 자가발전적 영향력 확장을 위해 새로운 의제를 찾아나선다.

매진하면 할수록 결국 동조집단 속의 내부통용 동조논리에 파묻혀 좌정관천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좋다고 믿고, 그 속에서 보람을 찾는다면 활동원들의 노력 봉사는 나름 자신들의 삶에는 값진 것이겠다.

정치권력에게 있어서 시민단체는 소중하다. 민주주의 하 권력기반은 선거철 쪽수인데 시민단체는 뭉치뭉치로 쪽수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우수자원 신예를 발굴할 수 있고, 활동원들은 자신들의 단체활동이 정치무대 데뷔의 첫발걸음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몇몇 이름난 정치인들과 호프미팅도 하고 식사도 함께하며 개인 휴대폰으로 연락도 취하는 등, 격려받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하니 우리가 믿는 가치가 실권자들에게 먹혀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심리도 갖겠다. 상호 공생관계인 것이다.

결국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시민단체 활동은 특정 정치집단의 거수기, 이중대, 관변단체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게 좋다면 어쩔 수 없다. 각자의 시간투자는 선택사항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들의 행위가 공동체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생활의 불편에만 몰두한, 고찰없는 정의감에 기댄, 얕은 믿음의 발로라면 큰일이다.

활동원 개개인은 얼마나 투철한 도덕윤리의 잣대로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해 왔고 앞으로 살아갈지 모를 일이다. 열성으로 활동하는데 스스로 반문할 시간이나 있을까.

우린 그저 이 사회의 건실한 소시민이고 작은 목소리를 냈을 뿐이에요, 민주시민으로써 당연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에요라고 하겠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취한 온갖 야비한 공작은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자신들의 치기어린 행위들로 인하여 상처받고 피눈물 흘리는 숱한 선량한 다수는 아랑곳 않으며..

무리생활 가운데 발전없는 그릇된 신념을 좇으며 각자의 초심과 순수성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는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젊은 사람들은 생산적 활동을 모색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많은 눈이 안 보는 듯 하지만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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