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마이스=정성민 칼럼니스트)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자신만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더불어 살기에 사회상규상 인지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과 매너를 갖추게 된다. 인간은 불완벽한 존재라지만, 문제는 불완벽도의 정도가 개인의 인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란 점이다.

개개인마다 살아온 환경과 기질적 요인으로 다양한 성품과 행위패턴은 가질 수 있다. 한 인간에게는 지적 물리적 역량과는 별개로 열등감과 방어심, 자존심, 자부심, 좋고나쁜기억들 등 많은 심리적 요인들이 교차하며 인성을 형성하고 일련의 행위를 빚어낸다.

만약 그 품성의 관성이 일부 통제 제어되지 못하고 유관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와 최소한의 존중으로 배려되지 않거나 상호간의 경솔한 언행이 빈발할 경우 그 관계의 지속성은 흐릿해진다.

한해 두해 누구든 장시간 사람을 알고 만나다보면 그 사람의 행동패턴, 기질, 성정, 습성, 호오, 의리, 지적역량, 에너지, 삶의자세, 이상, 아픔, 위기대처역량 등을 숱한 상황 속에 겪고 이해하며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격조가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나를 이해해주기만을 바라고 의존하는 사람이 있고, 행여 내가 주변에 피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스스로 뭐든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다.

악착같이 계산적인 사람도 있고, 허술한듯 베풀며 지내는 이도 있다. 누구를 보든 이용해먹을 꺼리가 없나만 찾는 사람이 있고, 그저 누가 좋아서, 인간이 그리워서 보는 이도 있다.

자신의 자존감은 중하고 타인의 자존감은 도외시하는 언밸런스한 인식에 머무는 이들도 있다. 나는 지켜져야할 소중한 존재고 남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저열한 인식을 유지하기도 한다. 이기심이 악심으로까지 간 경우다.

소탈하여 허심탄회한 사람도 있고 자기포장에 여념없으며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이도 있다. 내잘난맛에 사는 사람도 있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어찌 채울까 고심하는 사람도 있다.

뻔히 자신의 행위가 타방의 불편함을 유발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의식적으로 반복하기도 하며, 상대의 마음은 아랑곳않고 내 기분에 취해 달려들다가 그것이 배척당했을 때는 앙심을 품기도 한다.

늘 한결같은 이도 있고 변덕이 죽 끓듯하여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이도 있다. 대체로 너그러움이 체화된 사람이 있고 대체로 까칠한 사람도 있다.

일일이 계획적인 사람도 있고 즉흥적인 사람도 있다. 소극적인 사람도 있지만 적극적인 사람도 있다. 위축된 사람도 있고 당당한 사람도 있다. 섬세한 사람도 있고 거친 사람도 있다. 속으로 앓는 사람도 있고 누가 어떻게 보든 그때그때 거침없이 쏟아내는 사람도 있다.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몸을 빼고 뒤로 물러서 어찌할 바 모르는 이가 있는 반면, 발벗고 나서 온몸으로 바람을 막아 상황을 관리하는 사람도 있다. 말은 많고 행동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말은 없어도 행동이 먼저인 사람이 있고, 말과 행동이 함께 가는 사람도 있다.

하나를 받으면 열을 갚을 생각을 하는 ‘고마움을 아는 사람’도 있지만 열을 받아도 하나로 돌려주려하거나 한끗의 서운함으로 상대를 원망하는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도 있다.

인성의 형성과정에는 여러 배경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보니 그런 다양성에 일일이 대응하여 보는 것은 누구나 적잖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과는 교류를 최소화하는 게 한정자원인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이다.

관계에는 시간가치도 있다. 얼마나 장시간을 함께 했느냐. 이것은 대체불가의 가치다. 오랜관계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더군다나 적이나 원수로 시작된 게 아니고 우호로 시작되고 보낸 시간이 대체로 우의를 다진 경우라면 남달리 너그러움을 가져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간가치도 인성과 예의염치가 따라주지 않으면 제로로 환원될 염려가 있다.

혹자는 관계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친분의 정도를 상호 얼마나 막 대할 수 있느냐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아무리 허용의 한도가 높은 가까운 사이라도 일정 선을 넘는 언행들까지 용인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각자 마음에 감내할만한 허용의 범주란 게 있는데 몇차례는 묵과할 수 있겠지만 반복되면 재고하게 된다.

이해의 범주에 있을 때는 계속 보는 것이나 그 경우를 넘어서면 꺼려진다. 영감과 힘을 주고 서로 의지가 되며 온 마음 쏟을 고맙고 소중한 존재들이 있는데 만나면 상처나 주고받고 힘빠지는 그런 관계는 지양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생각하는 이는 반성할 줄 알고, 의지있는 이는 스스로 개선한다. 반성하는 이는 내삶에 겸손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며 때에 따라 고개를 숙일 줄 안다. 이 부분은 좋은데 이 부분은 참 아쉽다 싶을 때도 있다.

가급적 유관한 모든 이들이 이런 각자의 선을 잘 알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만 좋은 관계라 하겠다.

갑을관계로 얽혀있어도 인간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 하는데, 하물며 그런 것도 없는 마당에는 더더욱 조심성을 갖추는 게 낫다.

가르침을 주는 이가 좋은 것이고 겸허히 배우는 이가 좋은 것이다. 기본인성이 좋고 예의염치가 있는 사람이 좋다. 예의염치를 아는 좋은 인성의 소유자와 교류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즉, 기본이 된 사람이냐, 기본이 안 된 사람이냐겠다.

호혜평등과 상호존중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살며 언제나 누구에게나 조심성은 필요할 것이다. 예의염치의 시작은 곧 조심성이다. 이는 신뢰의 초석이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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