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고 헤이하치로와 체스터 니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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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보유한 원자력 항공모함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니미츠항공모함은 태평양 전쟁의 영웅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사진:SNS

(더 마이스=박상후 칼럼니스트)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스카(横須賀)는 미 제 7함대의 모항으로 원자력 항공모함이 자주 기항한다. 미 해군의 원자력 항공모함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일본해군을 격파한 태평양 전쟁의 영웅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이름을 딴 니미츠호다.

요코스카의 명소는 일로전쟁당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파한 토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기함 미카사호를 복원해 띄워놓은 미카사공원(三笠公園)이다.

미국과 일본은 제 2차 세계 대전당시의 적국이지만 토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미카사호가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보존된 데는 토고 헤이하치로를 향한 니미츠 제독의 존경심에 힘입은바 크다.

태평양전쟁의 영웅, 니미츠제독, 사진: 페이스북

니미츠는 해군 후보생 시절 토고 제독을 만났다. 일로 전쟁이 끝나자 메이지 천황은 승리를 축하하는 야외축하사교파티인 엔유카이(園遊会)를 연다. 이 때 동경만에 정박하고 있었던 미 전함 오하이오에도 초청장을 보내는데 미 해군의 상급사관은 여기에 응하지 않았고 체스터 니미츠 등 후보생들이 대신 참석한다.

말단 후보생인 체스터 니미츠의 테이블에 토고 제독은 기꺼이 와서 이들에게 일로해전의 전법과 해군선배로서의 경험담을 들려줬고 이에 니미츠는 감격했다. 체스터 니미츠는 후에 저서에서 이 때부터 토고를 마음 속의 스승으로 여겼고 그와 같은 위대한 제독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적기도 했다.

1934년 토고 헤이하치로가 사망하자 일본에서는 국장으로 치러졌는데 이때 니미츠는 그가 함장이었던 중순양함 오거스터 호가 요코하마항에 입항했을 때여서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니미츠는 또 태평양 전쟁당시의 마리아나 해전을 회고하는 대목에서도 토고 헤이하치로를 언급했다. “쓰시마 해전에서 토고 헤이하치로가 러시아 발틱 함대를 기다린 것처럼 나도 일본연합함대를 기다렸으며 그가 고안해낸 전법과 같은 방법으로 일본연합함대를 격멸했다.”

러시아 발틱함대를 쓰시마 해협에서 수장시킨 쓰시마 해전의 영웅 토고 헤이하치로는 터키와 핀란드에서도 상당히 호평을 받았고 일본국내에서도 사리사욕이 없는 군인의 표상으로 존경을 받았다. 토고 헤이하치로의 공이 너무나도 큰 만큼 그의 아들을 문부대신으로 추대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토고는 이에 대해 “인간은 그릇이 있다. 타고난 그릇대로 사는 것이 행복(人間には器がある。器で生きてこそ幸せだ)이라면서 고사하고 아들을 쇼난湘南의 도서관장을 시켰다.

토고 헤이하치로의 미카사호, 출처:SNS

토고가 쓰시마 해전을 지휘했던 기함 미카사호는 요코스카항에 정박된 상태로 보전됐지만 세계 제 2차 대전이 끝나자 위기를 맞는다. 극동 위원회의 소련대표 쿠즈마 제레비얀코(Kuzma Derevyanko)중장이 “러시아를 파괴한 미카사 보존은 말이 안된다. 고철로 바다속에 침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소련의 이런 입장을 미국측이 가까스로 만류해 미카사호는 폐기위기를 벗어난다. 소련도 러시아 혁명당시 짜르의 궁전을 향해 포격을 가한 오로라호를 네바강변에, 영국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사용된 빅토리호를 포츠머스항에, 미국은 독립전쟁에서 활약한 컨스티튜션호를 보존하고 있다면서 미국측이 소련측을 무마시킨다. 함체 본체는 보존하는 대신 함교와 포탑, 연돌 등을 제거하도록 한다.

당시 요코스카시는 미카사호를 문화 교육사업에 전환하는 것을 미군정으로부터 허가받고 민간에 불하한다. 민간업자는 미카사호를 미 해군병사를 위한 위락시설로 개조한다. 미카사호내 토고제독의 지휘실은 ‘카바레 토고’란 댄스홀로, 참모장 카토 토모사부로 소장 작전참모 아키야마 사네유키소령이 근무한 방은 카페로, 포탑은 수족관으로 개조됐다.

미카사호는 1950년 한국에서 6.25사변이 발생했을 때 또 다시 위기를 맞는다. 원자재 가격이 앙등하면서 함내의 쇠붙이와 황동, 구리 등이 매각돼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다. 이후 미카사호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1958년 니미츠 제독은 문예춘추(文藝春秋)의 수필란에 ‘나와 미카사’란 제목의 글을 기고한다.

“내가 미카사를 방문한 것은 1945년 9월로 미주리 함상에서 항복문서조인식(9월 2일)이 있었던 전날이었다, 나는 토고 원수를 흠모하기 때문에 일본이 국민의 귀감으로서 보존하는 미카사를 방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별 생각 없는 미군병사에 의해 미카사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부품과 자료가 사라진 흔적이 있었다. 도고 원수를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유명한 군함이 더 이상 황폐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미 해병에게 명령해 보초를 세워 미카사를 지키게 했다. 나는 이 명령이 지켜진다는 보고를 받고 있다. 미카사가 지금 비통해할만한 상황인 것은 매우 유감이다. 나는 이 군함이 일본의 가장 위대한 해군의 기념물로 보존돼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리 될 것을 희망한다. 내가 쓰는 이글이 원고료라도 받을 수 있다면 전액을 토고원수기념보존기금에 기부하고 싶다.”

현재 미카사공원(三笠公園)에 있는 미카사호는 1961년에 원형대로 복원된 것으로 2008년에는 요코스카항에 기항한 미해군 원자력 항모 니미츠호의 승조원 120명이 미카사호의 도장과 청소 자원봉사에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요코스카에 정박돼 있는 미카사호는 토고 헤이하치로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인연으로 미일 동맹의 상징이다. 동시에 토고 헤이하치로가 젊은 시절 영국해군에서 7년 동안 수학한 적이 있고 미카사호가 영국제라는 점에서는 러시아에 대항하는 일영 친선의 상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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